명상·편지

좋은 이별을 위하여

선우(善愚) 2016. 3. 1. 01:19

 

 

 

<좋은 이별을 위하여>

 

 

ㅇ 우리의 삶은 상실의 연속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나보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처 자식을 먼저보내거나, 이혼,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안정된 직장과 괜찮은 직위에서의 은퇴, 본의아닌 퇴직 등, 수없이 많은 것과 이별하며

살아 갑니다. 때문에 '삶'이란 단어는 어딘지 슬픔을 머금고 있는것 같기도 하네요.....

 

 떠나보내는 슬픔을 소화 해 내는것, 우리는 이를 '애도'라 하며,

또한 '애도'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것을 내 마음안에 담아 간직하는 작업이고,

상실의 슬픔과 우리자신의 한계를 반추하여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를

획득하게 하는 과정이라 하지요.

 

 그런데 이 슬픔의 흐름이 막혀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고 막혔을때, 그것은 고여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슬픔으로 오염시키기도 하고.....

 

 인생이란 떠남과 만남이 끝없이 교차하는 과정이니 잘 떠나보내기,

즉, '좋은 이별'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성장시키고 좋은 만남을 준비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애도 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 중에서 몇 대목을 소개 합니다.

 

 

ㅇ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

 

우리에게 사랑의 담론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데 비해 이별의 언어는 기이할

정도로 빈약하다. 심지어 이별은 나쁜 것, 숨겨야 하는 것, 피하고 싶은 추악한 것처럼

인식된다.

 

 우리 마음의 문제는 잘 이별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고, 치유와 성장은 잘 이별하는데서 비롯된다.

뒤늦게라도 잘 이별하면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

 

 

ㅇ 돌아오지 못한 마음, 사랑은그자리에....

 

 

열정을 쏟았던 대상은 멀리 사라 졌지만 열정은 여전히 떠난 사람을 향하고 있다.

돌던 팽이가 단숨에 멈출수 없는 것처럼 '리비도(본능)' 투자도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마음속에 여전히 잃은 대상을 간직한 채 그의 집앞을 서성이거나

그가 언젠가 돌아올거라 믿거나, 뒤늦게 혼자 분노하기도 한다.

 

 

 ㅇ 거두어온 마음을 어디에 둘까

 

 열정의 대상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쪽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거두어들인 상태이다.

하지만 회수해온 리비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혼돈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이기적으로, 혹은 파괴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려 애쓰기도 한다.

내가 열정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열정이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몰아간다.

 

 

 ㅇ 죄의식을 갖거나 자신을 비난하지 말아야...

 

 죄의식이 느껴진다면 애도 작업이 목표를 향해 가는 중이라고 이해한다.

어떤 관계든 잘못된 책임은 절반씩 있다고 믿는게 공정하다.

상대방만 원망하는것도 나쁜 습관이다.

죄의식이나 자기 비하감은 사랑을 독처럼 느끼게 만들어 급기야 사랑하는 능력을

잃은 지점까지 길 수도 있다.

 

 

 ㅇ 용기 있게 살아가야...

 

 세상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생이 무의미해 질 때,그런 때조차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애도 작업의 일부이다. 인간뿐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길 때,

의혹을 품은 채 신에게 경배한는 일이 삶의 일부이다.

 

 실패나 실연을 무릅쓰고 다시 미래를 꿈꾸눈 것,

밥을 먹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참아내며 계속 먹는 일이 바로 용기이다.

 

 

 ㅇ 이제 나는 행복을 노래하련다.

 

 열정이 비로소 치유와 회복을 위해 사용되는 단계이다.그것을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변화와 성장을 꾀할 수 있다. 우울증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때야말로 회복하기로 마음먹어야 하는 전환점이다.

 

 앞의 과정들도 애도 작업의 일부지만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의 과정이며,

꾸준한 인내와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김형경의 애도 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 중에서